What is Good Goods?

편안한 수면과 여유있는 공간 사이,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

HaHaHoHo_Do 2020. 3. 2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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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내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망

나만의 공간이라는 로망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에 나온 초록 지붕 집 속 앤의 공간을 보고 난 이후일까. 아니면, 학창 시절까지 내 방이 없었던 것의 반작용일까. 내 방에 대한 욕구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자취를 한 지 오래되었지만, 자취하면서도 언제나 나만의 공간을 꿈꿨기 때문이다. 음... 하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자취방에서 무언가를 꾸며보는 일은 조금 모험적인 일이긴 하다. 게다가 뜻하지 않게 이사를 자주 했던 나로서는, 최소한의 가구로만 사는 것이 이득이었다. 이사 비용과 수고로움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 첫 직장을 얻고서도, 내 자취방은 기껏해야 서랍장과 앉은뱅이책상이 생겼을 뿐이었다. 자취방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니 뭔가를 더 들여놓아야겠다는 생각조차 - 심지어는 침대조차 - 사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첫 직장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밥 먹듯 했다. 저녁 8시 퇴근이 칼퇴였고, 밤 10시 퇴근조차 행복했으며, 새벽 1~2시쯤이 좀 야근한 퇴근길이었고, 새벽 4~5시쯤이면 많이 야근하고 퇴근하는 것이었다. 야근 수당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사회 초년생에게 '목돈'이라 할만큼의 돈이라도 좀 모였을 텐데.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비정하다. 내 일상은 완벽히 무너졌고, 돈도 안 모였으며, 병만 들었다. 그렇게 육체적 & 정신적으로 번아웃을 동시에 겪고, 거의 1년 정도를 쉬었다. (사실 재취업 기간 포함이다) 쉬면서 내게 가장 필요하다 느껴졌던 일은 '일상'의 회복이었다. 일도 하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도, 그런 평범한 일상의 회복 말이다. 그리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내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의 프레임. 한눈으로 봐도 좁다.

프로젝트 첫 단계, 자는 공간과 생활 공간을 분리하자!

처음으로 든 생각은 내 자취방이 혼돈의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원룸의 특성상 생활 공간의 분리가 어렵지만, 일상생활 자체가 무너진 자취방은 공간을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돼지우리였다. 뜬금없는 TMI지만, 사실 돼지는 생활공간을 나름 구분하고 산다고 한다. (돼지가 나란 인간보다 낫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튼 나는 어떻게서든 무질서함 속에서 질서를 조금이나마 세우고 싶었다. 그때 엉망진창인 내 잠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넓은 공간을 유지한답시고, 이사할 때 짐이 많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있던 나다. 거기에 좌식 책상을 사용했으니, 방바닥은 곧 잠자리요, 식탁이며(책상은 이미 꽉 찼으니까), 이런저런 일을 하는 공간이었다. 그 방바닥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침대가 필요했다. 가장 쉽게 바닥이라는 공간에서 분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돈에서 온다. 돈이 없어서 집을 옮길 수 없으니, 투룸은 무슨, 방 사이즈도 늘리지 못한다. 전세? 서울에서는 원룸 전세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침대는 사야겠고, 공간은 너무 좁아지면 안 되고. 그 와중에 내구성이나 안전성도 완전히 무시하기 힘들고, 나중에 이사까지 고려해서 무게까지 신경 쓰다 보니, 차라리 침대를 포기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근 한 달을 침대를 찾고, 저장해두는 일만 했다.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는 복층식이 아니라, 적층식 침대다. 2층 침대지만, 두 침대간 간격이 거의 없다.

벙커 침대, 소파 침대, 접이식 침대...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

한 달 정도 검색만 하다 보면, 온갖 1인용 침대를 보게 된다. 그중 접이식 침대와 소파 겸용 침대는 우선순위에서 빠르게 제외되었다. 접이식 침대는 결국 접어서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잘 때 접히는 부분에 등이 배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파 겸용 침대도 같은 이유에서 제외되었다. 사실상 소파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불장도 없는데, 덮는 이불이랑 배개는 어디에 둘 건데? 그리고 매일 접고 펴는 일을 할 만큼, 나는 부지런하지 못하다. 조금 오래 고민했던 것은 벙커형 침대였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내구성과 천장의 높이 때문이었다. 내 자취방이 낮은 천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벙커침대를 사용하면, 잠잘 때 천장과 가까운 것이 싫었다. 내 예산 안에서는 내구성이 좋은 침대도 없었다. 그리고 벙커형 침대는 대체로 철제 프레임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무 프레임이 좋았다. 따뜻한 분위기가 나기 때문이다. 약간 다른 방식의 벙커형 침대도 있었다. 나무 프레임이었고, 하단에 대형 수납공간이 있는 침대였다. 반 층 위의 생활 공간을 만들어 준다나. 짐도 정리하면서, 생활공간도 분리할 수 있다니! 너무 멋진 이야기였지만, 무겁다는 후기를 보고 바로 포기했다. '이사할 미래'는 자취러가 항상 물건을 살 때 신경 써야 하는 필수 요소다. 설치할 땐 기사님이 도와주신다지만, 해체하고 재조립할 땐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일반 벙커형 침대도 이사할 때 까다롭긴 하겠다. 해체하지 않으면 문 밖으로 내보낼 수 없으니.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는 모서리에 홈으로만 상층 침대를 고정하기 때문에, 삐걱이는 소리가 자주 난다.

온갖 침대를 보며 이상형 월드컵을 치르듯, 한 달간의 비교분석 리스트에서 꾸준히 버틴 침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였다. 우선 매트리스 기준으로 일반 싱글침대보다 매우 좁지만(80cm) 길이는 나름 일반적(200cm)이다. 내 원룸에서 공간 차지를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사용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였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나무 프레임이었으며, 아무런 칠도 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내 자취방에는 종종 친언니가 놀러 와 하룻밤을 묵고 가는데, 그때 내어줄 수 있는 하나의 침대가 더 있는 적층식 침대라는 점도 좋았다. 나중에 좀 더 넓은 방을 쓰면, 두 개를 붙이면 되니, 나름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침대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까지 버틴다면 말이다) 게다가 나 혼자 들지는 못해도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들 수도 있을 법한 무게로 보였다. 특히 서랍장이 달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프레임 자체는 나무지만 가볍다고 했다. 실제로도 사이즈 때문에 혼자 못들었을 뿐, 프레임 자체는 근육이 없는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무게가 아니었다. 즉, 침대를 해체하지 않고도 편하게 이사할 수 있다는 말씀! 이케아 공홈의 내용을 봐도, 이 침대는 이동을 편하게 해서 쉽게 인테리어를 바꿀 수 있는, 소파 겸용 가능한 침대였다. 그런고로, 이불만 깨끗하게 정리하면, 혹은 나중에 큰 곳으로 이사해서 새 침대를 산다면, 우토케르는 나름 소파로도 사용이 가능한 점도 구매 포인트였다. (그럴 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인의 강아지님이 소파로 사용해주셨다)


이케아는 결코 내구성이 좋은 브랜드가 아니다. 나사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나무가 쉽게 깨지기도 한다.

당신에게 이 침대를 강추하지 못하는 이유

이케아의 우토케르 침대는 나에게는 (거의) 완벽한 침대였다. 그리고 10달이 지난 지금도 후회 없이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완벽하다 할 수 없다. 일단 침대의 폭이 매우 좁다. 매트리스 너비가 80cm이므로, 당신에게는 편안한 수면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아니 거의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침대 헤드도 없는 구조라, 배치를 잘못하면 자다가 떨어지기 딱 좋다. 나도 한두 번 떨어질 뻔하고, 침대 위치를 몇 번 조정했다. 그리고 이케아 특성상 내가 조립해야 한다. 조립하다 욕할 뻔...이 아니라 쌍욕이 나온다. 책장 조립? 그건 껌이다. 침대라는 거대한 가구를 조립해야 한다면, 마음의 각오 정도로는 안 된다. 실제로 나를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 또한, 높이는 평범한 높이의 침대와 비슷하지만, 2층으로 이루어진 침대다. 말인즉슨, 침대 밑 수납공간이 없다. 수납공간 하나가 소중한 자취러에게는 엄청난 마이너스 요소다. 그리고 이케아는 결코 내구성이 좋은 브랜드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용하는 나무의 퀄리티 대비 저렴한 것이지, 침대치고 저렴하지는 않다. 실제로 거의 10개월 사용하면서, 몇번 옮기다 보니 침대와 침대 사이의 다리 프레임이 살짝 깨지기도 했다. 방이 조금 더 넓어서 침대를 옮길 대 조심할 수 있었다면 아마 좀 낫긴 했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케아 우토케르 침대를 사지 말라는 얘기 같은데, 제대로 읽었다. 이 침대는 내가 한 달간 고민하며,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리한 후 구매한 침대이기 때문이다. 결코 당신을 위해 구매한 침대가 아니다. 수면은 인간이 사는데 있어 식욕만큼 중요한 것이다. 나는 편안한 수면이라는 부분을 약간 양보하고,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선택했다. 심지어 약간만 양보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마른 편이라 좁은 침대에 대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이 '편안한 수면과 여유 있는 공간 사이'인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두세 번을 다시 돌아간다 할지라도, 이케아 우토케르를 구매할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침대, 즉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침대는 우토케르뿐이었으므로. 그러므로 이 글은 그저 당신이 나만의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 첫 단계로 침대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생각해보아야 할 하나의 가이드에 지나지 않음을, 끝에서야 밝힌다. 다음 가이드는 내 공간을 위한 작업용 책상 고르기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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