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다.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살 것인가, 크레마 사운드를 살 것인가, 크레마 그랑데를 살 것인가! 여러 블로그들의 후기도 찾아보고, 유튜브도 보며 결국 선택한 것은 리디북스였다. 잘 쓰고 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몇가지 소소한 단점들도 보였으니까. 그 이야기는 리디북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기로 하자.
무튼 리디 페이퍼 프로를 샀지만 크레마 사운드를 손에 쥐게 될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누가 전자책을 쓰는 것을 보고 고민을 1도 하지 않고 전자책을 구매했다는 친구는 사긴 샀지만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몇개월째 방구석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기가 산 제품의 이름도 몰랐다. 그래 친구야, 네가 산 제품은 크레마 사운드야.. 내가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무수히도 많이 고민했던 제품 중에 하나지. 리디 페이퍼 프로를 잘 쓰고 있었지만 나는 꽤 기계욕심이 있는 편이다. 새롭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기기라면 꼭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크레마 사운드도 써 보고 싶었다. 내 쇼핑에 더 큰 만족을 줄 것인지, 잘 못 샀다는 약간의 슬픔을 줄 것인지 알 수 없는 약간의 긴장도 즐거웠다.
첫번째 고민, 크레마 사운드- 한 손에 잡히는 네가 참 좋았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가 썩 마음에 들었다. 리디 페이퍼 프로는 뭐 한 손으로 못잡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그렇게 책을 읽었다간 손목이 나갈 판이었다. 종이 책을 읽듯 양손으로 받치고 읽어야 좋은 사이즈였다. 또 겨울에도 주머니에 넣어다니기엔 다소 큰 사이즈라는 것이 아쉬웠다.
크레마는 달랐다. 완벽하게 한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사면서 가장 만족했던 부분도 바로 물리키였는데, 크레마 사운드에는 물리키가 잘 탑재되어 있었다. 딸깍딸깍 물리키를 통해 페이지를 넘기는 경험이야 말로 온통 디지털로 구현되는 전자책의 UX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굳이 아날로그 감성의 회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디지털 하드웨어의 가능성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리디 페이퍼 프로도, 크레마 사운드도 마음에 들었다.
반면 크레마 사운드는 정말 한 손으로만 볼 수 있다. 사이즈만 놓고 본다면 나는 크레마 사운드를 샀을 것이다. 물리키도 있고, 사이즈도 내게 딱 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크레마 사운드를 사지 않았는가?
두번째 고민, 어떤 플랫폼에서 책을 볼 것인가? VS 어떤 사용자 경험을 누릴 것인가?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살 것이냐, 크레마를 살 것이냐를 놓고 가장 크게 고민했던, 고민해야 할 지점도 이 지점이다.
"나는 주로 어떤 플랫폼에서 책을 소비할 것인가?"
'소비 하는가?'가 아닌 '소비 할 것인가?'로 질문한 이유는 이렇다. 종이책을 구매할 때 내가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은 yes24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스이십사를 이용해왔고, 한번 단골고객이 되면 쉽게 플랫폼을 이동하지는 않기 때문에 쭉 이용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yes24에서 발행하는 크레마 사운드는 꽤 좋은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크레마 사운드는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도 맘에 쏙 들지 않나! 하지만 나는 결국 리디 페이퍼 프로를 선택했다. 폐쇄형 플랫폼으로 동작되는 리디 페이퍼 프로가 보다 빠르고 편리한 사용자 경험(UX)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에 대한 나의 사용자 경험은 쉽게 말해, 오류가 덜 나는 게 좋다는 뜻이다.
크레마 사운드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한 도서를 넣을 수도 있고, 밀리의 서재의 부상 이후 대형 서점마다 추진하는 북클럽도 이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전자책에 담을 수도 있다. 리디 페이퍼 프로는 오직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책이나, 리디셀렉트를 통해 구독하고 있는 책만 볼 수 있다. 리디북스가 망하거나, 리디북스의 책 라인업이 무너지면 내 책들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상당히 치명적인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리디 페이퍼 프로를 구매한 것은 결국 전자책은 다양한 기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는 전자책에 대한 나름의 철학 때문이었다. 윈도우/안드로이드를 계통의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대부분의 것을 애플로 바꾼 뒤 만족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오류가 덜 난다는 데 있었다. 오픈 소스를 여기저기서 가져와서 사용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오류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게다가 이미 난 아이패드도 가지고 있다.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싶다면 아이패드로 읽어도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전자책은 전자책의 기능(책을 끊김 없이 잘 보여주는 기능)만 충실한 게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용자 경험, 그것이 결국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사게 만들었다.
세번째 고민, 크레마 사운드 - 먹통현상이 이 제품만의 문제는 아니었군요.
아니나 다를까. 친구에게 전자책을 빌려온 바로 다다음날. 크레마 사운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연구해 봐야겠다 싶어서 전원을 키려는 순간이었다.
'어... 왜 안되지? 큰일이네. 친구껀데.. 그저께 빌렸는데..'
당황스러웠다. 전원을 누르고, 재부팅을 해보려 했지만 스크린 세이버 창이 띄워진 채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빌리자마자 내가 고장냈다기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 정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는걸! 방전이 되었나 싶어서 충전을 하고 다시 눌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쫄깃한 심정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크레마 사운드 스크린세이버 멈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따라 나도 이렇게 고쳤다.
1. 충전해준다.
2. 핀셋으로 위쪽 구멍을 누른다.
3. 파란불이 꺼지면 그때 재빨리 핀셋을 빼고 버튼을 다시 눌러준다.
4. 안되면 반복한다.
요약하자면, 전원버튼 옆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걸 바늘로 꾹 누르면 잠시 뒤 불빛이 꺼진다. 그럼 그때 바늘을 빼고 다시 전원을 눌러 재부팅 시켜준다.
다행히 버그현상은 친구 모르게 잘 고쳤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런 경험을 주는 사운드에 정이 조금 떨어지고 말았다.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사용하면서는 없던 일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내 소비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한번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블로거의 경우 하루에 2번씩 먹통이 되어 사운드 뒤에 핀셋까지 들고 다닌다던데, 어떻게 그렇게 사용하나 싶다. 기기적인 문제 해결은 소비자가 할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해야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크레마 사운드. 한 손에 잡히는 사이즈는 참 좋지만 잦은 먹통현상이 아쉽다.
크레마 사운드 가격 : 108,000원 (할인시 98,000원)
크레마 사운드 판매처 : 알라딘, Yes24, 각종 오픈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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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G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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