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삶은 꽤나 팍팍하다. 내 집 마련은 커녕 내 방하나 취향껏 꾸미기 어렵다. 함께 사는 식구들이 있다면 더더욱 진득하게 무엇인가 내 공간을 꾸밀 여력을 만들지 못한다. 모든 물건은 공용이 되기에 나만을 위한 어떤 것을 가꿔 나가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책을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되면 침실 하나, 드레스 룸 하나, 그리고 서재용 방도 만들거야. 현실은 좁은 방 한칸에서 잠도 자고, 옷도 여기저기 걸려 있고, 책들도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짐덩어리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요를 깔고 이불을 피다가 갑자기 화가 났다. 아니 왜ㅡ 이렇게 내 몸 하나 뉘기 힘들지? 그때 눈앞에 책장이 보였다. 어린시절부터 버리진 못하고 모으기만 했던 책더미가 눈에 보였다. 그래, 어차피 책도 한 번 읽으면 두 번은 잘 안 읽잖아. 다 내놓자.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데, 난 생각난 것은 즉시 실행에 옮기는 특성이 있다. 그렇게 결국 책장에 잠들어 있던 약 90% 가량의 책들은 3일에 걸쳐 정리되고, YES24와 학교 앞 중고책방에 몽땅 팔아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전자책이 없거나, 종이책만의 디자인과 색감이 훌륭한 책이 아니라면 난 결코 종이책을 사지 않으리! 이 좁은 집에 더 이상 불필요한 자원을 들이지 않으리!
하지만 책을 안 읽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전자책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사려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아이패드가 있는 걸? 또 다른 E-book 리더기가 필요할까? 산다면 어떤 것을 사야하지?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그랑데?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중고로 나온 리디북스? 지금 전자책을 고민하고 있는 분이라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번째 질문, 왜 굳이 전자책이야? 그냥 아이패드 쓰면 안돼? E-book 볼 수 있잖아
맞다. E-book은 아이패드로도 볼 수 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모델은 아이패드 프로 9.6인데, 아이패드 특유의 컬러풀한 화면에 프로다운 빠른 반응속도까지. 전자책과 비교대상 자체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산지 어언 4년이 넘었는데도 어쩐지 아이패드로는 책을 읽어본 일이 거의 없다. 아이패드로 그림도 그리고, 넷플릭스도 보고, 문서도 종종 쓰고, 필기도 하고, 컴퓨터 옆에 놓고 디자인 참고용 듀얼 모니터처럼 사용하는 등 꽤 다양한 활용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가만히 앉아서 지루한 문자를 읽기에 아이패드 안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조그마한 핸드폰으로 할 때보다 아이패드로 하는 게임이 더 재밌고, 전날 보다 잠든 넷플릭스는 이미 다운로드도 다 받아놓아서 와이파이가 없어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지하철에서 종종 유튜브로 나는 3d Max와 프로그래밍 강의들을 찾아보곤 하는데 소프트웨어 특성상 아이폰으로 보기엔 글씨가 너무 작다. 아이패드로 보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이도 저도 하기 싫을 땐 프로 크리에이트로 그림을 그린다. 아무튼 아이패드로는 책에 손이 안간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읽고 싶다가도 말초적인 즐거움이 가득한 것들에 정신이 팔리기 십상이다. 책 읽는 기능 외에는 다른 건 기대할 수 없는 전자책이 필요한 이유다.
두번째 질문, 전자책이 정말 눈에 더 좋을까?
전자잉크의 원리는 정전기의 원리와 비슷하다. 자석을 철가루에 대면 그곳으로 철가루가 모이는 원리로 화면에 특정한 글씨들을 표시하는 방식이란다. 우리가 매일 같이 보는 모니터와 핸드폰은 사실 우리가 못느껴서 그렇지 1초에 수십번씩 불빛을 깜박이며 화면을 표시해준다. 화면을 깜박일때 나오는 빛에는 블루라이트가 있기에 모니터를 오래 보면 눈이 나빠진다는 말을 하게된다. 그래서 전채책을 사려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블루라이트 차단이라는 핑계로 전자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전자책을 볼 때 눈의 피로가 덜한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니터 화면에서는 블루라이트가 나오는데 반해 전자책은 전자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눈의 피로가 적다고 알고 있지만 모니터든 전자책이든 우리가 보는 것은 반사된 빛의 일부이고, 무엇이든 오래보면 눈이 아프다는 게, 곰곰히 생각하면 이치에 더 맞는 말이다. 종이책을 보아도 눈이 아픈건 마찬가지니까 전자책을 본다해서 눈이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는 말자. 물론 리디페이퍼프로를 낮에 읽으면서 백라이트를 끄고 봤을 땐 눈이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밤에 백라이트를 키고 책을 보다 자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백라이트라는 것 자체가 직접 발광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 좋을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밤에는 차라리 방에 불을 키거나 스탠드 조명 아래서 읽다가 졸리면 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눈의 피로를 핑계로 다양한 기계를 꽤 사랑하는 나는, 모니터와는 다른 전자 잉크의 느낌을 깊이 알고 싶었다.
세번째 질문, 가격 방어는 잘 되고 있는가?
나는 7개월 전에 구매했다. 당시 영풍문고에서 연말맞이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명함을 넣고 이벤트에 당첨되면 1+1을 준다고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려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당첨되지 않았다. 가격은 20만원께였다. 19만 9천 얼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리디북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가격으로 판매중이다.
사고 났는데 가격방어가 안되는 일만큼 속상한 일도 없는데, 그러고보면 내가 쓰는 제품들은 가격 방어를 참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살 때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는데 그동안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세계문학전집이랑 묶어서 판매하는 패키지 구성은 추천하기 어렵다. 우리 이미 많이 경험 하고 있지 않나?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사주셨던 전집은 몇권이나 읽어봤던가. 생각해보면 무슨무슨 전집으로 나온 책들은 거의 장식용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자기 취향에 맞는 책들을 발견하고 책장에 차곡차곡 하나씩 쌓아갈 때 교양이 더 풍부해 지지 않을까? 세계 문학 전집이 아무리 우수한 서적이라고 해도 나에게 의미가 없으면 소용 없는 일이니까. 단품을 사서 리디셀렉트를 이용하거나 평소 사고 싶었던 책들을 쌓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7개월 사용 후, 나는 만족하는가?
얼마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왔다. 짐을 줄이고 줄여서 떠나는 곳인지라 책을 가져가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욕심은 많아서 책을 가져가고 싶었다. 그것도 많이. 리디 셀렉트를 구독신청 해두고 와이파이가 잘 되는 한국에서 왕창 다운로드를 받은 뒤 비행기에 올랐다. 난 비행기를 타면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소음에 예민하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아 내용 이해가 어려운데다가 영화를 볼 때 음악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집중 안되는 영화를 보느니 책을 읽자는 주의다. 보통은 비행기에 타면 금방 잠들어서 책을 가져가더라도 한권 읽을까 말까인데, 이날은 달랐다. 잠도 오지 않고 영화도 볼 수 없어서 리디 페이퍼 프로를 꺼내서 책을 읽었다.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5권을 읽었다. 세상에.
그 밖에도 지하철에서 표지를 꺼내어 읽기 싫을 때라던지, 가방에 무거운 것들이 많은데 책도 챙기고 싶을 때라던지, 리디 페이퍼 프로는 꽤 다양한 내 일상에 어울렸다. 7개월간 사용한 후기로도 꽤 괜찮은 기기라고 추천할 수 있다. 다음번엔 어쩌면 리디북스를 잘 활용하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쓸지 모르겠다. 사실 책장에 책을 넣고 정렬하는 방법을 몰라 처음에 꽤 많이 헤맸으니까.
기기의 사이즈에 불만이 없다면, 또 이미 다른 플랫폼에서 구매한 e-book이 많지 않다면 리디 페이퍼 프로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좋은 것들을 수집합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리뷰합니다.
Good, Goods
내가 크레마를 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전 포스팅을 참고해보자
https://good-goods.tistory.com/2
요약하자면 전자책이 가져야 할 본연의 기능, 즉 사용자의 독서를 돕는 일에 더욱 친화적인 기기가 리디 페이퍼 프로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보급형일수록 이 기능, 저 기능이 다 붙어있고, 전문가용일수록 본질에만 충실한 제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맛집을 가더라도 육개장부터 김밥과 파스타, 수제맥주까지 파는 정체모를 식당보다 김밥을 팔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집이 더 맛있지 않나. 내게 리디 페이퍼 프로가 그랬다. 공공 도서관 이용도 안되고, 예전에 샀던 전자책을 옮겨올 수도 없지만 리디북스 안에서 좋은 책들을 쌓아 나가면 그것으로 책의 기능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크레마 사운드 리뷰> 한 손에 잡히는 네가 좋았다, 하지만.
지난 겨울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다. 리디 페이퍼 프로를 살 것인가, 크레마 사운드를 살 것인가, 크레마 그랑데를 살 것인가! 여러 블로그들의 후기도 찾아보고, 유튜브도 보며 결국 선택한 것은 리디북스였다...
good-good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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